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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미국-신자유주의는 미국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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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상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1-02-21

 

 

요즘 한국일보 보기가 참 그렇습디다만... 제가 과거에 일할 때만 해도 분명한 중도였던 이 신문이 언젠가부터 조중동 뺨치는 수준의 극우개그들을 선보이며 답답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애정이 더 갈 수 밖에 없는 한국일보... 진짜 목불인견의 신문이 된 지 오래지만, 그나마 한 가지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일보의 진짜 강점은 외신에 있습니다. 그것도 미주 쪽 외신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이 신문이 오래 전부터 동포사회에 뿌리를 내린데다 실제로 취재 및 기사 작성 능력이 되는 기자들도 몇몇 주요 외신 소스 포스트에 배치가 돼 있습니다. 동포사회 신문으로서 직접 지역사회 정치인을 만나 인터뷰를 딴다던지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겁니다.

한국일보 본국지에 실리는 외신들도 적지 않은 수는 특약을 맺은 통신사들 발이 아니라 '한국일보 미주본사'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밥을 꽤 오래 먹었으니 돌아가는 상황이야 나름 꽤 알고 있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제가 쓴 기사가 한국에서 톱기사로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그 한국일보에 나온 미국발 기사 몇몇이 눈을 잡아 끕니다. 젊은 처자들이 백신을 맞기 위해 할머니 변장을 해서 1차 접종까지는 성공했다던지,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은(미국에선 이런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손자가 백신을 새치기 접종받으려다 실패했다던지 하는 것들입니다.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사랄까요.

최악의 혹한기를 겪고 있는 텍사스 교민들과의 인터뷰 기사도 나옵니다. 물이 없어서 변기 물을 내리기 위해 눈을 녹여 썼다던지, 전기료가 갑자기 스무 배 가까이 뛰어 전기료 폭탄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던지. 전기 사업이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고 나서 미국은 정부의 개입이 국민의 삶에 최소화돼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서 국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민간에게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민간은 '많은 시민'이 아니라, '몇몇 대기업'이었던 겁니다. 트리클 다운이라는, 부자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낙수효과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미국말로 bull shit, 뻔뻔한 거짓말임이 드러난 지도 꽤 됐습니다. 그러나 그 관성은 미국에서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고,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이 운영해야 하는 게 마땅한 사업체들이 기업 소유가 되며 미국의 망가짐은 그 속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저렇게 편법으로 백신을 맞겠다고 꼼수를 부리는 것도 결국은 가장 현실적인 공포에서 비롯된 거라고 봐야 합니다. 만일 코로나에 걸리면 개인에게 억대 단위의 돈을 물릴 수도 있는 시스템 아래서, 그것은 질병으로 인한 공포가 아니라 '내 삶이 재정적으로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되는 겁니다. 스스로 탄탄한 국민 건강보험 및 의료 시스템을 사유화하라고 내어 준 나라가 겪을 수 밖에 없는 비극인겁니다.

어떤 것들은 절대로 사유화될 수 없는 게 있지요. 그걸 사유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요즘의 미국이 너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을 배우겠다는 한국의 관료들, 제발 미국의 좋은 점만 배워 가시길. 그리고 반면교사 삼아 어떻게 하면 저 위대하고 튼튼했던 나라가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지도 아울러 배워가시길 바랍니다. 신자유주의는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재앙에의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구성원들에게 각자도생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종국엔 공동체의 파멸을 불러오지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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