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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이 세상 마지막 떠나가는 길, 故 백기완 선생 애도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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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주
기사입력 2021-02-21

 

[국민뉴스=문홍주 기자] 故  백기완 선생(1933. 1. 24.~2021. 2. 15.)은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 출생하였다.  평생 변혁운동에 헌신하다 15일 운명했고 19일 까지 전국 사회장 분향소, 서울 노제 길목을 지키는 민중(民衆)의 고인(故人) 애도 눈물은 쉼 없이 흘러 마석 모란공원 장지 까지 강물 처럼 흘러갔다.
다음은 고인(故人)이 떠나는 故 백기완 선생 하늘 길에 애절한 마음을 표하는 글과 故 백기완 선생의 자작시(自作詩)를 소개한다. 선생님, 이제 가시렵니까!  이 땅은 노나메기와 거리가 아득하기만 한데, 통일의 길은 닫히고, 촛불에도 기득권들은 여전한데 정녕 가시렵니까? 막히면 길을 내어 가자며 한 살매(일생) 내내 홀로 이끄셨음에도 사위가 모두 암암합니다. 미풍처럼 속삭이다가 장마 뒤 가람처럼 달리다가는 폭포처럼 수직으로 내리꽂더니 곧 용오름으로 솟구치던 그 목소리, 자본과 권력, 반(反)생명을 향하여 단호하게 주먹질을 하시던 그 몸짓, 약자를 찾아가 나누어주시던 그 따끈한 한 모금. 이 모두가 사라진 이 자리, 너무도 깜깜한 절벽입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고 했던가요? 늘 권력과 자본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딱 한발 더 떼며 투쟁하셨습니다. 오로지 가진 놈하고만 싸워야 한다며, 터럭만큼도 타협하지 않은 채 늘 맨 앞에서 맞짱을 뜨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의 개인사가 바로 이 땅의 민중 투쟁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쪽저쪽의 모든 이들을 불러내고 또 하나가 되게 하는 가장 큰 어른이셨습니다.   원대한 꿈만이 변화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지금 여기’에 진부함과 무력함의 사막만이 펼쳐질까보아 유토피아의 오아시스를 만들고, 길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하여 노나메기의 별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내 배만 부르면 키가 안 큰다는 어머니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너도 나도 일하여 함께 잘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향하여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셨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며 엄혹한 시국마다 온몸으로 춤사위를 추셨습니다. 선생의 문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온몸으로 토해낸, 노나메기를 향한 비나리’겠지요. 따스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옛살라비(고향) 마을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이와 대립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 노나메기가 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들을 한데 뒤섞어 비나리 한바탕을 만드셨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니나(민중)들의 피와 땀의 현장과 말들을 아울러 민중사상을 형성하고 민중미학과 예술로 빚어내셨습니다. 현실을 올곧게 반영하면서도 환한 비전을 담아 온몸으로 쓰셨기에, 다른 점은 몰라도, 선생의 문학은 구체성과 진정성에서는 으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울보셨지요? 오체투지와 같은 투쟁 현장만이 아니라 말씀하시다가,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다가 자주 눈물을 보이셨지요. 모르는 이들은 의아해하지만, “김진숙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듯, 선생님의 그 용기와 강인함의 뿌리는 약자의 고통을 당신 것만큼 아파하는 공감이었습니다. ‘칼든 선비’라는 덧이름(별명)을 주시며 곁을 지키라 하셨지요. 그 말씀에 따라 별 볼일 없는 딸깍발이가 4대강사업, 한진, 유성 등의 희망버스, 쌍용자동차 복직투쟁에서 세월호와 촛불에 이르기까지 옆에서 모시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그 덕분에 선생님의 가없는 고독과 고통을 언뜻 엿보았습니다. 고독은 앞선 이들의 숙명이지만, “아무도 몰라!”라며 고개를 떨구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시다가 손을 부르르 떨며 소피를 참는 일은 다반사였고, 고문 후유증으로 여름에도 담요를 덮어야 함에도,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셨습니다. 평택에서는 집회가 끝나자마자 천막 안 난로로 모셨는데 곧 저보고 소주를 사오라고 하셨지요. 난로의 온기로도 언 몸이 녹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몸을 떨고 있었다면 당신께선 고문을 또 견뎌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의 가없는 고독과 고통을 덜어드리지 못하여 몹시도 죄송합니다. 이제 한 시대가 끝났습니다. 지금 빈 이 자리! 이후로도 오래도록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에 더욱 비통합니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투쟁의 서사, 말과 글들이 기억의 주름을 이루었다가 새록새록 빛을 뿜어낼 것이기에, 뿌리신 오롯한 씨앗이 나네(새싹)를 내고 숲을 이룰 것을 알기에, 아버지이자 스승이고 동지였던 ‘백발의 젊은 불쌈꾼(혁명가)’을 보냅니다. 그곳에선 부디 자당과 함께 평안하소서. 조사(弔詞)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백기완 선생님. 선생님께서 각종 거악에 대해 포효하며 호통치시던 그 늠름한 기상과 쩌렁쩌렁한 목소리, 또 담대하고도 맛깔나는 수많은 시와 노래들과 그 호방한 웃음과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핍박받아 울고 있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흘리는 절대적 연대와 따뜻한 공감의 눈물,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돈없고 빽없는 이 땅의 민초들은 민중권리의 옹호자, 노동자 · 민중의 호민관, 백기완 선생님을 잃은 슬픔으로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백범사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시면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파쇼적 만행에 대해 선생님께서 앞장서 저항하고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조직하실 때였습니다. 특히 1973년12월에는 유신독재 체제를 끝장내기 위해 선생님께서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셨었지요. 그러자 박정희 독재정권은 화들짝 놀라 “듣보잡” 수준의 폭거인, 개헌논의 자체를 금지시키는 내용으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를 발령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장준하선생님과 함께 첫 번째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구속자가 되셨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께서 장준하선생과 함께 군법회의에서 재판받는 모습이 도하 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사진을요. 저들은 두 분 선생께서 군법회의에서 재판받는 사진을 크게 실어 대학생과 국민들에게 고도의 공포심을 조장하려 의도하였지만, 도리어 대학생과 국민들은 더욱 거센 저항의 길로 나섰지요. 두 분 선생의 저항으로부터 촉발된 대통령긴급조치는 이후 민주화투쟁세력과 유신독재세력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쟁투가 벌어지면서 각종 무리수와 파행을 거듭한 끝에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결국 6년뒤 1979년 부마민중항쟁으로 발전되고 난 뒤 독재자 박정희는 심복의 총에 암살당하게 되면서, 유신독재체제는 그 종말을 고하게 되었지요. 선생께서는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세력에 대해서도 최초의 저항을 조직하셨었지요. 박정희 암살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79년11월24일 비상계엄하에서 서울 명동 소재 YWCA강당에서 결혼식을 치른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모은 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를 감행하셨지요. 이 시위로 선생께서는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로 끌려가 실로 잔인무도한 고문을 당하시고, 평소 82kg이던 몸무게가 38kg으로 줄어들 정도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셨지요. 선생께서 옥중에서 광주민중항쟁의 소식을 듣고 만드신 절창인 묏비나리는 바로 절실한 민중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되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각 지역의 절실한 저항의 노래, 투쟁의 노래로 확산되고 있지요. 1987년 6월민주항쟁과 7·8월노동자대투쟁 이후 열린 대선 공간에서, 그리고 1992년 대선 공간에서 선생께서는 독자적 민중후보로 나서 노동자 · 민중 중심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셨지요. 당시 선거공보에 표시되었던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라는 핵심 구호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선생께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신자유주의세계화 광풍앞에 풍전등화같은 처지에 내몰린 이땅 노동자 · 민중들의 투쟁을 지지 · 엄호하는 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셨습니다. 선생께서는 힘없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농민과 도시빈민 등 기층 민중들의 삶에 깊은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께서는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셨습니다. 통일문제연구소 이름판을 내걸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그리고 핍박받는 민중들의 투쟁에, 실로 든든하고 품이 너른 크나 큰  ‘기댈 언덕’으로 역할하셨지요. 재벌 앞잡이 이명박과 독재자 박정희의 후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민중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선생께서는 분연히 떨쳐 일어 나서 마지막 투쟁의 불꽃을 불사르셨지요.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저지 투쟁, 용산참사 규탄투쟁,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한미 FTA 비준저지 투쟁,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 규탄투쟁,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투쟁, 백남기 농민 물대포살인 규탄투쟁, 그리고 박근혜퇴진 민중총궐기 투쟁과 범국민 촛불대항쟁 등 숨가쁘게 진행되던 민주화 투쟁과 민중대항쟁이라는 큰 전선의 맨 앞줄에서, 선생께서는 투쟁의 상징으로 우뚝 서셨지요. 선생께서 병상에 눕기 전의 마지막 활동들이 아니셨나 생각됩니다. 민중총궐기 투쟁과 촛불항쟁으로 저 무도한 박근혜 일당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을 끝장내는 거대한 승리를 쟁취하고서도, 민중정치, 진보정치의 미욱함으로 말미암아 투쟁의 성과는 유실되고, 지금 이땅의 민초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감염병 피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주변부 사회계층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자산불평등, 소득불평등, 교육불평등, 직업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 상황은 거의 폭발직전의 상황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 해결의 고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생께서 병상에서도 간절히 기원하셨던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겨레의 큰 어른이신 백기완 선생께서는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자 · 민중의 해방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계훈제, 백기완으로 호명되는 "재야어른"의 마지막 어른이셨지요. 백 선생께서 돌아가시면서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 간 셈입니다. 이제 저희들 후진들이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사회의 적폐청산과 진정한 민주화, 그리고 사회불평등 혁파와 노동자 · 민중 해방의 길로 전진해 나가야 할 과제가 남겨졌습니다.   선생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며,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함께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 평등·평화·통일 세상, 민중세상에서 부활하셔서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고단하셨던 온갖 헌신 모두 내려 놓으시고, 이제는 부디 편안히 지내시길 기원드립니다. 저희들이 좀 더 힘을 합쳐 간절하게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상임대표 /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글 - 백기완 -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 떼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떼기에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 떼기에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몸만 맴돌자 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저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려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음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 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지려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 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라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정치꾼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터지는 소리 쩡쩡, 그대 등때기 가르는 소리가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내려치는 주인 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천추의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찍소리라 그 소리 장단에 맞춰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부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찍을 나꿔채 그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들이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을 몽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으고 그것도 안 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것도 안 되면 그 곳까지 언 무를 수셔 넣고 이런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놈의 짓인 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 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 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바로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 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 따위는 여보게 그대 몸에 한 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고 부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민중의 생기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목지 몸짓이지 여보게,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저 싸우는 현장의 장단 소리에 맞추어 벗이여,알통이 뻘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새내기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비로소 한 춤꾼은 굽이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비록 저 이름 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껴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털어라 이 세상 껍질을 털면서 자리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져도 이기고 있는 노동자의 아우성 오, 우리 굿의 절정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들이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 위에 희대의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 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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